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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타임즈 업 현상이 뜨거운 불길처럼 솟아오르는 전세계적 시국에서 아카데미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원래 오스카 시상식은 태생부터 정치적이었으며, 굉장히 머리를 잘 굴리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적당히 예술성과 대중성이 가미된 작품들을 선택하고 널리 홍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넘친다. 시청자들은 4시간 동안 엔터테인먼트의 끝판왕, 미국 할리우드가 만들어내는 지구상 최대의 쇼를 흠뻑 빠져 즐긴다.

나 역시 몇 시간 후에 그럴 것이다.

 

 

 

* 작품상

 

여론: <쓰리 빌보드> or <세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내 예측: <쓰리 빌보드> / 진짜: <팬텀 스레드>

 

☞ 굵직한 대외 시상식들은 <쓰리 빌보드>가 수상하고, 제작자 조합상에서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수상하면서 2파전 구도가 되었다.

당해 사회 분위기와 이슈를 적극 반영하는 아카데미 사싱식(오스카)의 특성상 이번 해에는 <쓰리 빌보드>를 밀어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작품상 후보작 9편 중(아직 보지 못한 <레이디 버드>를 제하면) 개인적으로 뽑은 최고의 작품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이며, 추후에 비평적으로 마스터피스라 불릴 유일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오스카는 구색 맞추기 용으로 가끔 이런 작가주의 영화들을 (상은 줄 생각 없이) 후보에 올리곤 한다. <트리 오브 라이프>, <아무르>같은 영화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 감독상

 

여론: 예르모 델 토로 / 내 예측: 예르모 델 토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진짜: 조던 필

 

☞ 감독상은 멕시코 출신 다크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로 기정 사실화되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훌륭하고, 트럼프 시대의 고립주의에 반하는 감독의 출신지역도 시사적이며, 알폰소 쿠아론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에 이어 멕시코 트리오로서 감독상을 얻을 명분도 충분하다.

다른 무게감 있는 후보인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폴 토마스 앤더슨은 본인들의 최고작이 아닐뿐더러 아카데미 취향의 감독도 아니기 때문에 패스.

내 생각엔, 영화의 '연출'만을 논한다면 가장 자격이 있는 후보는 <겟 아웃>의 조던 필이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롭고 논쟁적이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자신에게 익숙한 스타일을 버리고 도전한 끝에.

 

 

 

 

 

* 남우주연상

 

 

여론: 게리 올드먼 / 내 예측: 게리 올드먼 (<다키스트 아워>)

 

☞ 상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던 명배우 게리 올드만은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다키스트 아워>에서 보여줬다. 그것도 지극히 '아카데미 스타일'로.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를 <레옹>으로만 기억하는 영화팬은 국내에서도 차차 사라질 것이다.

 

 

 

 

 

* 여우주연상

 

 

여론: 프란시스 맥도먼드 / 내 예측: 프란시스 맥도먼드 (<쓰리 빌보드>) / 진짜: 샐리 호킨스 or 마고 로비

 

 

☞ 이 부문도 기정 사실화된 영역이지만 개인적으로 약간은 아쉽다.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사실상 <파고> 이후로 그를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준 적이 없다고 본다.

그 대신 영화에 잘 녹아들며 감정연기를 충실히 해낸 샐리 호킨스 혹은 <아이, 토냐>에서 자신을 완전히 승화시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최상의 연기를 펼쳐낸 마고 로비의 퍼포먼스를 더 평가해줘야 되지 않을까 싶다.

 

 

 

 

 

* 남우조연상

 

 

여론: 샘 락웰 / 내 예측: 샘 락웰 (<쓰리 빌보드>) / 진짜: 리처드 젠킨스

 

 

☞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인 샘 락웰이 드디어 메인스트림에서 인정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코믹하면서도 속 깊은 인물을 잘 연기하는 그답게 <쓰리 빌보드>에서도 블랙 코미디 영화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며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수상에는 이견 없다.

하지만 리처드 젠킨스가 보여준 성소수자 연기가 더 기억에 남는 건 사실이다. 수많은 경력을 지닌 칠십의 베테랑 배우가 이전의 이미지들을 지우고 새 역할을 완벽히 소화하는 건 정말 존경스럽다.

 

 

 

* 여우조연상

 

 

여론: 앨리슨 제니 / 내 예측: 앨리슨 제니 (<아이, 토냐>)

 

 

☞ 이번 시상식에선 적어도 배우 부문에서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여우조연상 역시 압도적으로 앨리슨 제니가 우세하고, 또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나머지 후보들의 존재감에 비해 <아이, 토냐>속 앨리슨 제니의 아우라가 너무 컸다. 캐릭터 자체가 강렬하고(폭력적이고)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배우 자신도 찰떡같이 소화를 잘했다.

 

 

 

 

 

* 각본상

 

 

여론: <겟 아웃> or <쓰리 빌보드> or <레이디 버드> / 내 예측: <겟 아웃> 

 

 

☞ 예측이 어렵다. 가장 어려운 부문 중 하나다. 시나리오 작가 조합상에선 <겟 아웃>이 수상했고, 골든 글로브(GG)나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선 <쓰리 빌보드>가 트로피를 받았다.  시상식 중요 작품 중 하나인 <레이디 버드>도 빈 손으로 돌려보내긴 아쉽다. 가장 최근 시상식인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선 그레타 거윅이 각본상을 받았다. 

최종 수상은 조던 필이 할 것 같다. 작년 가장 센세이셔널한 영화였으므로 최소한 상징적으로라도 상이 수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각색상

 

 

여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내 예측: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진짜: <로건>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번 시상식 최대 수혜자다. 만듦새에 비해 너무 많이 노미네이트 되었다. 차라리 <아이, 토냐>가 작품상 후보 리스트에 있었다면 더 어울리고 좋았을 것 같다. 영화의 제재(동성애)를 감안한 오스카의 전략적 구색 맞추기 노미네이션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영화속에서 티모시 샬라메와 마이클 스털버그가 나누는 끝부분의 대화씬은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었다. 감독 출신 제임스 아이보리의 각색 역량이 연출자보다 더 돋보이는 영화.

나보고 한편을 꼽으라면 제임스 맨골드의 <로건>을 선택하겠다. 슈퍼히어로극에 가족드라마와 변형서부극이 어우러진 심도 깊은 이야기였다. 사회극과 서사시가 결합된 좋은 원작을 잘 각색한 <머드바운드>도 훌륭했다.

 

 

 

 

 

* 편집상

 

 

여론: <덩케르크> / 내 예측: <베이비 드라이버>

 

 

☞ 오스카는 재능 있는 상업 영화 감독을 싫어한다. (스필버그 이래로)

+ <덩케르크>는 수작이지만 놀란의 최고작이 아니다. 실상 이 작품은 놀란의 시나리오와 한스 짐머의 음악이 영리한 것이지 편집 리듬 자체가 혁신적인 건 아니다.

편집 조합상은 <덩케르크>가 수상하며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만, BAFTA에서 수상한 <베이비 드라이버>를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일전에 <본 얼티메이텀>이나 <위플래쉬>가 수상했던 것처럼 오스카는 빠르고 감각적인 편집리듬을 의외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에드거 라이트의 <베이비 드라이버>는 삶을 감각하는 음악의 리듬이 살아있는 영화다. 물론 주인공 베이비는 이명 때문에 24시간 이어폰을 쓰지만, 음악은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혹은 삶에서 초월하게 해주는 힘이 될 수 있다. 혼란스런 현대사회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K)

 

 

 

 

 

* 촬영상

 

 

여론: <블레이드 러너 2049> / 내 예측: <블레이드 러너 2049>

 

 

☞ 절대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촬영 거장 '로저 디킨스'는 이번에 무조건 타야 한다.

후보 지명만 열 네번째다, 열 네번째. 여태껏 수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미술상

 

 

 

여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내 예측: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진짜: <블레이드 러너 2049>

 

 

☞ 델 토로 영화 속 미술은 언제나 최상급이었다. 늘 기괴하게 아름답고 동화적이다. 특히 이번 영화는 질감이 더 따뜻하다. 단지 약간 장식적이고 가벼워 보인다는 게 흠.

내게 선택권을 주면 <블레이드 러너>를 지지하겠다. 이 SF는 기술적인 완성도가 대단하다. 심오하고 깊이있는 원작의 분위기를 더 심화시켰다. 촬영, 음악, VFX 뿐 아니라 프로덕션 디자인 역시 무게감 있다.

 

 

 

 

 

 

* 음악상

 

 

 

여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내 예측: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는 이전부터 가장 좋아했던 음악감독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번에 또 수상한다 해도 전혀 아쉬울 게 없다. 이번 영화도 테마가 무척 신비하게 아름다웠다.

다만, <더 퀸>이나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이나 <유령 작가>나 <이미테이션 게임등>등 이전 그의 스코어들이 더 좋았기에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회원이라면 <덩케르크>에 한 표를 던졌을 것 같다. 장엄함이라는 힘을 뺀 한스 짐머의 스코어는 오스카 음악상 스타일과 부합하는 것 같다.

 

 

 

 

 

* 주제가상

 

 

여론: <코코> / 내 예측: <머드바운드>

 

 

☞ 여기서 내 최대 도박을 감행해본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코코>나 <위대한 쇼맨>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지만, 이번 시상식의 '특수성'과 '시의성'을 감안해 볼 때, 여러 부문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머드바운드>의 주제가가 깜짝 수상을 할 개연성도 충분하다. 흑인 디바인 메리 제이 블라이즈가 여우조연상 카테고리에도 올라있으며, 분명히 시상식 축하공연에서 편곡의 힘을 얻어 더 웅장하고 멋지게 라이브를 할 것이므로 수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몇년 전 <셀마>가 그랬듯이. 그리고 그동안 너무 많은 픽사-디즈니 애니가 주제가상을 독식해왔다. 독점은 어디서나 좋지 않다.

 

 

 

 

 

* 의상상

 

 

여론: <팬텀 스레드> / 내 예측: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진짜: <미녀와 야수>

 

 

☞ <팬텀 스레드>는 걸작이지만 '의상'이 주요 소재일 뿐, 그 자체가 빛나지는 않는다. 또 오스카가 PTA를 계속 물먹일 가능성도 농후하다. 노미네이트만 해 놓고 상에는 인색했던 비슷한 거장들을 생각하면. (로버트 알트만, 마틴 스콜세지, 데이빗 린치 등)

비주얼 부문에서 <셰이프 오브 워터>가 휩쓸 가능성도 크다. 오스카는 원래 몰아주기를 좋아한다.

다만, <미녀와 야수>의 눈부신 의상을 생각하면 좀 아쉽다. 메가 히트 디즈니 영화라서 무시하는 건 부당하다. 엠마 왓슨의 드레스를 포함해서 영화 속 모든 의상들이 말 그대로 아름다웠다.

 

 

 

 

 

* 분장상

 

 

여론: <다키스트 아워> / 내 예측: <다키스트 아워>

 

 

☞ 이 부문도 논쟁의 여지가 없다. 게리 올드먼이 역사 속 윈스턴 처칠로 변신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분장팀이다. 완벽하게 그럴듯한 분장덕에 연기가 배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 음향상

 

 

여론: <덩케르크> / 내 예측: <덩케르크>

 

 

☞ 아비규환 전쟁터를 실감나게 만드는 절대적 요소는 소리다. 수많은 소리 요소들(목소리, 보트, 전투기, 총탄, 물, 바람 등)을 한데 모아 2차대전의 프랑스 격전지를 구현해낸 <덩케르크>가 수상할 것이다.

 

 

 

 

 

* 음향편집상

 

 

여론: <덩케르크> / 내 예측: <블레이드 러너 2049>

 

 

☞ 음향과 음향편집은 다르다. 보통은 두 개 부문을 한 영화가 가져가는 경우가 흔하지만 이번엔 다를 수도 있다. 음향편집 조합상에서 <블레이드 러너>도 '음향효과 및폴리' 부문에서 수상했다. 촬영상 하나만 받기엔 기술적으로 너무 훌륭한 영화다. 오스카 회원들도 그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 시각효과상

 

 

여론: <혹성탈출: 종의 전쟁> / 내 예측: <혹성탈출: 종의 전쟁> / 진짜: <블레이드 러너 2049>

 

 

☞ 모션 캡쳐 부분에서 진일보한 기술력을 선보인 혹성탈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시각효과상에서 우세하다. 유인원과 인간이 같이 나오는 장면은 이제 더 이상 이물감도 없고 더없이 자연스럽다. 앤디 서키스의 미세한 표정 연기도 시저 캐릭터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런 점을 오스카에서 높게 평가할 것 같다.

다만 <블레이드 러너>의 사이버 펑크, 네온 비주얼을 구현한 CG 기술이 개인적으로는 더 인상적이었다.

 

 

 

 

 

* 장편애니메이션상

 

 

 

여론: <코코> / 내 예측: <코코> / 진짜: <러빙 빈센트>

 

 

☞ <코코>도 픽사가 내놓은 또 한편의 코끝 찡한 감동 애니메이션으로서 훌륭하다.

하지만, <러빙 빈센트>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의 인상을 자기만의 프리즘으로 표현한 거장 반 고흐를 인상주의적인 플롯 형식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표현 방식도 혁신적이고 아름답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2017년의 애니메이션으로 생각할 것이다.

 

 

 

 

 

 

 

* 외국어영화상

 

 

여론: <판타스틱 우먼> or <더 스퀘어> / 내 예측: <판타스틱 우먼> / 진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 오스카는 칸을 비롯한 3대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영화에 상을 잘 주지 않는다. 완벽한 작가주의 예술영화보다는, 휴머니티가 가미된 드라마를 더 선호한다.

후보작 중 본 작품이 <우리는 같은 꿈은 꾼다>밖에 없지만, 워낙 독특하고 좋은 영화이기 때문에 사적으로 추천한다.

 

 

 

 

 

* 장편다큐멘터리상

 

 

여론: <Faces Places> or <Last Men In Aleppo> / 내 예측: <Faces Places>

 

 

☞ 후보작 중 단 한편도 보지 못한 주제에 염치가 없지만, 내 감을 한 번 믿어본다.

여론 예측 작품 중 전자는 소재(전쟁, 난민)가 너무 무거우면서 이번 시상식 화두(성 평등)와 약간 거리가 있고, 후자는 아녜스 바르다가 감독이라는 점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바르다는 작년 열린 거버넌스 어워드에서 공로상격 오스카 트로피를 이미 받은 바 있다.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유럽의 거장 여성 감독이 무대에 오른 후 기립박수를 받는 훈훈한 모습이 연출되길 원할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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