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렇다면 소크라테스, 당신을 길러준 우리들의 말을 듣게. 당신을 길러준 우리들의 말을 듣게. 생명이나 자식, 그 외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먼저 정의를 생각하게.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명부의 임금 앞에서 당신 자신을 변명할 수 있게 될 거야. 만일 당신이 크리톤이 하라는 대로 하면, 더 신성해지지도, 더 올바르게 되지도 않고, 또한 저 세사엥서도 더 행복해지지는 않기 때문일세. 이제 당신은 무고한 몸으로 피해자로서 떠나가는 것이지 악행을 한 사람으로 떠나가는 것은 아니네. 법률이 아니라 인간의 희생자로서....... 그러나 악은 악으로 갚고 손해는 손해로 갚으면서 우리들과의 약속과 동의를 파기하고, 당신이 조금도 해를 끼쳐서는 안 될 모든 것, 곧 당신 자신, 당신의 친구, 당신의 나라, 그리고 그나라의 법률에 해를 끼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줄곧 당신에게 분노할 것이며, 우리들의 친구인 명부의 법률도 당신을 적으로 받아들일걸세. 명부의 법률도 당신이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 우리를 파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야. 따라서 우리 말을 듣고 크리톤의 말을 듣지 말게.'

 

 

 

위 글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처형하려는 상대편의 입장에 서서 감옥에 있는 자신을 찾아온 친구 크리톤에게 하는 말이다. ([크리톤])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의 인간이 할 수 있는 말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논리적이고 초연하다.

내가 해를 입더라도 그것이 사회의 법규와 사람들의 정의감에 부합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혹은 더 나아가 대다수 사람들의 그릇됨을 일깨워주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함. 대한민국 국민은 2009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현대적 실례를 목격한 적이 있다.

 

반면에 그 이후 취임한 두 명의 대통령은 끝까지, 죽어서까지 자신의 오류를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클 듯 하다.

인간이란 본래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가 저지른 실수, 흠결, 잘못등을 왜곡하거나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 인간이 지니는 그릇됨의 크기는 '온전히 자기 자신을 알고 그 한계를 인정하느냐 혹은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통찰한 바 있다.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칸트의 정언 명령('자신의 의지의 원칙이 항상 일반적인 법칙의 원칙이 되게 하라')을 잘못 해석하여, '국가의 법(히틀러의 명령)에 맞추어 그 원칙에 따라 행동'했다. 박근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법(유신독재와 개발주의)에 맞추어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라'가 그 자신의 잘못된 정언 명령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가 '사유의 불능성, 그 가운데서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무능함'이라고 보았다. 무지가 악으로 연결될 때, 인류에게 해를 끼치는 끔찍한 범죄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생각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해서 자신을 객관하시키지 못하는 지도자는 결국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지난 10여년 간 분명히 목도했다.

 

 

전직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그에 따른 스캔들로, 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인물이다. 생각해보면 닉슨과 박근혜는 공통점이 많다.

국가 안보 프레임(베트남전, 종북몰이) / 비선실세의 존재(에드가 후버 및 CIA, 최순실) / 민중의 저항(학생·인권 운동, 촛볼시위) / 기밀 누설자에게 책임 덮어씌우기(엘스버그, 고영태) /  외부 조력자(이너 써클, 재벌) / 내부 부역자들(홀드먼·엘릭크먼, 문고리 3인방·김기춘·우병우·조윤선 등) /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심각한 성격적 결함 등.

 

닉슨은 민주당에 대한 불법 도청(워터게이트 사건)과 거짓말들 때문에 결국 헌정 사상 최초로 불명예 퇴임해야 했다.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인 70년대의 미국 민주주의의는 국가 지도자가 국민을 기만하는 작은 '거짓말' 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물며 이명박과 박근혜는 집권 시기에 저질렀던 수많은 불법과 비리가 이미 증명된 상태이다. 도덕성의 문제는 물론이고 실정법까지 위반한 이런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서 관용과 선처를 베푼다면 우리 민주주의, 법 질서는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징벌적 처벌의 개념을 빌려와 본보기가 되도록 더욱 강하게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이와 같은 잘못, 부정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정의에 호소했던 타오르는 촛불의 파도가 앞으로도 꺼지지 않고 더 나은 사회와 국가를 만드는 기초 정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뒤늦은 2016, 2017 영화계 비판(독설)  (0) 2018.05.05
꿈과 미래  (0) 2018.05.05
랭보  (0) 2018.04.01
특별하지 않은 당신을 위하여  (0) 2018.04.01
그녀의 시간  (0) 2018.04.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