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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이키루 - 구로사와 아키라

JGH 2021. 4. 29. 22:34

ⓒ 1952 Toho Company

 

 

 "아니야, 늦지 않았어. 이제 나도 뭔가 할 수 있어. 내가 할 마음만 있다면!"

위대한 영화는 곧 위대한 드라마이고, 위대한 주제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 역시 그렇다. 여기엔 한 인간의 모든 것을 건 열정·선의, 의지·존엄이 있다.

 

감독의 다른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화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트레이드 마크인 깊이감 있는 Z축 카메라 움직임, 확실한 심도 구분, 표현주의적 연기가 그렇다. 주인공에게 시한부가 선고된 이후 장면에서 어지러운 도로의 소음을 강조하는 감정의 청각화 역시 탁월하다. 인물의 자아를 비추는 거울 샷들은 모던하고, 매치 컷으로 과거와 현재의 서사를 연결(강화)하는 방식도 세련됐다. 미술적인 부분에선 근미래의 디스토피아 사회처럼 그려지는 일본 대도시의 풍경이 흥미롭다.

반복되어 강조되는 세대 간 갈등, 세대 간 단절의 테마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의미심장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주인공이라는 후반부 플롯은 웰즈의 <시민 케인>을 연상시키지만, 영화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플롯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반부는 위암 선고를 받은 와타나베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반면에 후반부는 그의 죽음 이후 주변 사람들의 회고·증언과 더불어서 플래시백으로 '시민 영웅 와타나베'의 죽기 전 6개월 간 행적이 묘사된다. 이렇게 총 세 겹의 레이어를 통해 한 인간의 생의 말미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은 탁월한 스토리텔링이라고 밖에 더 할 말이 없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해피 버스데이 투 유' 씬이다. 퇴사하려는 젊은 여직원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와타나베 칸지의 재탄생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진다. '저 여직원처럼 활기있게 되고 싶다'에서, '시민과장으로서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뭔가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사고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인해 생의 동력을 얻으며 아무리 막다른 골목에 있을지라도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고, 주체적인 의지로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인생의 노예에서 주인으로" 거듭나는 이 순간은 지쳐 있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울림을 준다. 이 한 장면 만으로도 2시간 20분이 넘는 50년대 흑백 영화에 시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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