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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이 돼버린 영화관>

 

여러분은 영화관이라는 장소가 곧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영화관과 그를 바탕으로 존재하는 영화산업이 지속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서두부터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제가 최근에 기이한 일을 하나 겪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이른 시간대 혹은 아주 늦은 시간대에 영화를 감상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런 경험을 하신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바로 주말 오후 시간대에 서울 중심부의 국내 1위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요즘 가장 흥행하는 영화를 (대관을 따로 한 것도 아닌데) 혼자서 본 일입니다. 

1인 관람이라는 생경함 때문에 한동안 영화 내용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여러모로 시사하는 점이 큰 일이었습니다. 이건 저라는 한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이지만,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나홀로 영화 관람, 영화관 관객 급감)이 코로나19 창궐 이후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거시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OTT와 숏폼 콘텐츠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19세기 말에 등장해 20세기 대중문화 전반을 지배했던 영화는 이제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슬픈 일이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영화매체와 불가분의 관계인 ‘영화관’ 역시 침체 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짧은 리듬의 자극적이고 민감한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고, 사람들은 여기에 점점 중독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독은 엄청난 의지와 노력이 아니고서는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측면에서, 콘텐츠 산업의 미래는 어두워 보입니다. 영화는 근 100여년, 어쩌면 현재까지도 대중문화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야기 매체입니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약간 암울하지만 영화의 쇠퇴를 = 이야기의 쇠퇴로 확장시켜 이해해도 크게 이상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스토리와 스펙터클>

 

영화가 전해줄 수 있는 콘텐츠로서의 쾌감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바로 ‘스토리’와 ‘스펙터클’입니다. 영화 역시 서사예술의 한 일종이기 때문에 플롯(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영상 매체로서의 특징인 비주얼 요소(스펙터클)를 포함합니다. 

최초의 영화인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은 화면을 종으로 가로질러서 마치 스크린 밖으로 뛰쳐나오는 듯한 기차의 박진감 넘치는 운동성이 내용의 전부입니다. 

영화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 역시 약간의 트릭(편집)을 통해 환상적인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그 기원에서부터 이미 ‘스펙터클’의 운명을 품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D.W. 그리피스의 대표작 <국가의 탄생>(1915)은 교차편집과 클로즈업이라는 형식상의 발명을 통해 영화가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매체라는 사실을 공표했습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사진처럼 실제를 전시하는 것을 넘어서서,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고 심상을 일으키게 하는 ‘스토리’ 콘텐츠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영화도 계속 발전합니다.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 <사운드 오브 뮤직>,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이티>, <백 투 더 퓨쳐>, <타이타닉>, <반지의 제왕>, <아바타>까지.

 

우리가 흔히 영화를 시네마(Cinema)라고 표현할 때는, 이처럼 서사적인 요소와 더불어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웅장하고 유장한 느낌까지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영화관’은 영화를 1차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자 가장 완전무결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본다고 했을 때는 보통 극장에서의 관람을 의미하지, 노트북이나 핸드폰에서의 시청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2시간 반 ~ 3시간에 달하는 이런 극장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고도의 집중력과 참을성을 요구하지만, 당시의 관객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거의 불만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통을 상쇄할만큼의 즐거움을 콘텐츠(이야기)가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떨까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이야기(스토리&스펙터클)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중 하나로,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는 현실과 맞물린 창작자들의 아이디어 & 능력 고갈을 거론할 수 있습니다. 혹은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수용자의 요구에 발맞춰 콘텐츠의 형태가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렇습니다.

후자에 대해서 조금 더 덧붙이자면, 요즘 시대는 사람들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불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런 흐름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오랜 유행에 따른 부작용,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양극화와 갈등, 기후위기와 전염병의 창궐 등을 그 배경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대중들은 긴 호흡을 통해 시간을 들여 진지한 이야기를 즐기기 보다는, 현실의 속도에 발 맞출 수 있거나 현실을 잠깐 잊게 하는 고자극 콘텐츠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혼돈의 시기일수록 독자들, 관객들을 사유할 수 있게 하는 밀도 높은 이야기의 가치는 더욱 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소설, 음악, 영화 등을 막론하고 오래된 고전(클래식)은 존재하지만 우리가 새롭게 추앙할 ‘신고전’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게 악순환(‘사람들이 찾지 않음 → 좋은 이야기가 생산되지 않음 → 사람들이 더욱 찾지 않음 → 좋은 이야기가 더욱 생산되지 않음’)으로 이어져서 결국 의미 있는 이야기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영화관의 미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과 이야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한치 앞도 예상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믿을 수 있는 건,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의 특성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사회적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이라는 건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너무 외롭습니다. 가혹하리만큼 개인에게 외로움을 강요하는 세상입니다. 1인가구는 점점 늘어나는데, 이 외로움과 공허를 해소할 곳은 마땅치 않습니다. 결국 대안은 영화관입니다. 

 

여기서 잠시 질문 하나만 던지겠습니다. ‘영화관’의 가장 큰 특징은 뭘까요? 

사실 영화는 어디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영화관보다는 TV나 PC로 훨씬 더 많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앞에서 ‘스펙터클’을 운운하긴 했지만, 사실 작은 스크린으로 보는 영화의 효과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자기 방 안에서 소음과 빛을 모두 차단하고 코 앞에 영상 기기를 갖다 댄 채 영화를 감상해도, 전달되는 감정이나 감동의 크기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와 대별되는 극장만의 특장점은 그곳이 ‘대중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비슷한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 곧 영화관이라는 장소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사실상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영화를 수반한 소통을 하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것입니다.

 

또 현대인은 이미 ‘영화관’이라는 장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도 합니다. 영화 전문가들은 보통 극장을 공동 제의를 행하는 일종의 영적 장소로 비유합니다. 하지만 저는 더 나아가서 영화관이 ‘무의식의 상담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차마 말하지 못한 현실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감정, 묵은 정념들을 영화관에서 흘려보내고 처리합니다. 이런 장소가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팍팍하고 고통스러워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화관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외로움, 고독과 같은 감정을 극복하는 종으로 진화하지 않는 이상 세간의 우려와 달리 극장은 계속될 거라고 희망적으로 전망해 봅니다.

그리고 영화예술이 지속되는 한, 이야기도 계속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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