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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화녀' 82> (1982)

JGH 2018. 4. 11. 15:01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23691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모든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명제를 기술한 바 있다.

이후 영화 역사의 숱한 걸작 호러·스릴러 영화들이 프로이트를 계승하여 억압된 괴물들을 장르의 주인공으로 활용해왔다.

 

60년대를 시작으로 7-80년대를 거치며 급속한 산업화를 이뤄낸 한국사회에서도 억압은 존재했다.

21세기인 지금도 우리의 정신과 사고를 옭아매는 바로 그것, '가부장제'라는 공동체의 관습법이 억압의 주체로서 공기중에 배회하고 있다.

한 집안의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여성'은 대한민국에서 억압의 객체로 오랫동안 고통받아왔다.

그러므로 그들이 괴물이 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꿈의 스테인드글라스

 

서울 근교에서 양계장을 하는 동식과 정순의 집에 식모(가정부)로 온 '명자'(나영희 분)는 무용가가 꿈인 순수한 시골 처녀다. 백치미가 있는 그녀는 좋은 데로 시집 보내준다는 정순(김지미 분)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된다. 무보수로 일하면서 부엌 일, 양계장 일,  집안의 아이들(맏딸과 막내 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와중에 정순의 취미인 '스테인드글라스' 수집, 조각에도 관심을 보이게 된다.

여기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정순의 꿈(희망)이자 명자의 욕망이다.

정순은 2층 양옥 주택을 여느 집과는 다르게 스테인드글라스 장식물들로 가득 채우며, 명자는 그 속에서 동식(전무송 분)을 통해 신분상승과 재물 획득을 꿈꾼다.

어렴풋이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 유리 가림막 안에서 명자가 동식과 정사를 행할 때, '성(聖)'을 상징하는 다채로운 원색의 컬러는 '속(俗)'으로 타락한다.

영화 속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컬러인 '빨간 색' 역시 인물의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빨간 색채는 흔히 사랑과 에로티시즘의 색으로 인식되곤 한다. 특히 명자가 동식에게 정사 전에 항상 신도록 강요하는 '빨간 양말'은 야성의 레드를 상징한다.

 

 

 

욕망의 계단

 

이 작품이 원작 <하녀>(1960)와 가장 다른 부분 중 하나는 '계단'의 활용이다. 전작에서처럼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신분 상승 욕망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추가된 지하실 계단은 인물의 죄의식을 드러내는 공간이 된다.

불륜과 살인을 행한 명자는 닭 사료를 만들어내는 지하실에 내려갈 때마다 끔찍한 환상에 시달린다. 감독 김기영은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의 병치를 통해 의미의 외연을 확장한다.

명자와 동식이 나누는 대표적인 두 번의 정사신에서의 표현적인 연출 또한 눈여겨볼 만 하다.

극 중 동식이 작곡한 노래 '사랑의 화녀'를 배경음악으로 해서 강렬한 몽타주 이미지가 펼쳐진다.

수많은 벽시계들이 내는 불협화음과 스테인드글라스가 빚어내는 몽환적인 화면은 하늘이 두렵지 않은 욕망을 표현한다.

특히 후반부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쥐약을 탄 물을 마신 후 납처럼 변한 후에도 욕정을 놓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은 압권이다. 

 

 

 

진짜 악녀, 아주머니

 

플롯에서 원작 <하녀>와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하녀(가정부)의 '의도'다. 팜므파탈적 성격이 강했던 원작의 하녀와 달리 명자는 동식의 외도를 막으려다 오히려 강간당한다. 이후에도 자신의 의지와 달리 뱃속의 아이를 잃게 된다.

말하자면 먼저 '시작'한 건 명자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광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원인제공자는 아니다.

가장 주목해서 봐야 할 캐릭터는 바로 '정순'이다. 음악 교사인 엘리트 남편과 대척점(양계장 일)에서 돈버는 일(고상하지 않은 일)을 도맡아 하는 그녀는 철저히 자신의 꿈과 욕망을 억누른 채 살아간다.

극 초반부에서 형사가 "애 엄마는 의사도 판사도 목사도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남편인 동식이 "절제와 헌신"을 강조하는 것은 정순이 처한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죽음과 파국의 연속인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정순의 행동이다. 처음 명자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를 쫓아내거나 본인이 이혼했으면 모든 상황이 종료됐을 것이다. 2018년 현재의 사회의식을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는 8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다. 아직도 군부 독재의 서슬퍼런 기운이 남아있던 시대다. 정순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 자신과 가족의 평판·위신·수치심 등을 범죄보다 더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뒤에는 당연히 사회, 곧 '가부장제'라는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인 'Woman of Fire', 곧 '화녀'는 불의 여자, 불타고 있는 여자라는 뜻이다. 뉘앙스는 좀 다르지만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 극장판 제목('Fire Walk With Me')이 떠오르는 강렬한 제목이다. 두 영화 모두 불타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 인상적으로 표현되었다.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연소되어버리는 명자, 실성해서 스테인드글라스 갓등을 스스로 깨부수며 꿈을 산산조각 내는 정순, 이 둘 모두 어쩌면 한국 사회가 낳은 괴물일지도 모른다.

욕망은 억압되어 있을수록 더욱 기괴하게 분출된다.

김기영은 자신이 살았던 당대에 가장 억압되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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