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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양산도> (1955)

JGH 2018. 4. 1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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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 사회에서의 억압.

김기영은 초기작부터 인물들의 주위 공기를 유유히 흐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굴레를 의식한다.

반상제와 사·농·공·상의 위계에 따라서 철저하게 계급의 구별이 있었던 왕조시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개인들은 자신의 삶과 사랑에 있어서 주체적일 수 없는 존재다.

그리고 자유가 억압된 개인의 의지가 당도하는 종착점은 파국이 될 수밖에 없다.

 

 

 

춘향전

 

<양산도>의 인물 구성과 갈등 구도는 고전 소설 [춘향전]의 그것과 유사하다. 한 여자와 두 남자가 등장해 극의 중심을 이루며 악역을 맡은 남자는 높은 계급을 가진 호색한이자 망나니로 그려진다.

차이는 [춘향전]이 민중의 희망을 담은 이야기인 반면, <양산도>는 감독 김기영이 세계를 바라보는 깊은 고민이 담겨있는 서사라는 점이다.

조선시대에 억압받고 고통받았던 하층 계급 백성들이 판소리를 통해 자신들의 한을 풀었다면, 김기영은 '성'과 동물적 욕구 같은 자신의 테마를 통해 비극을 한 층 더 강조한다.

 

 

 

청춘의 사랑

 

시골 고을의 젊은 청춘 남녀인 수동(조용수 분)과 옥랑(김삼화 분)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여색을 밝히며 밤낮 활만 쏘며 돌아다니는 무령(박암 분)이 방해하지만 않으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많은 자식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들이 같이 있을 때 하는 행동들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꽤 유치하다. 요즘말로 소위 '꽁냥꽁냥'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애정 행위들이다.

육체적으로는 다 자랐지만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원초적 욕구로 가득한 젊은 남녀. 김기영은 두 사람의 결합을 방해하는 것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소한(그러나 욕망의 관점에서는 중요한) 행위들까지도 놓치지 않고 묘사한다. (사랑의 밀어들, 첫날 밤의 아슬아슬함 등) 무령이 애꿎은 닭(번식의 상징)을 활로 쏘아 맞힌다든지, 방에서 날계란을 게걸스럽게 깨먹는다든지 하는 장면들도 성적 함의가 다분하다.

 

 

 

불타는 나무

 

옥랑이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수동을 배신하고 무령에게 몸을 허락하면서부터 극의 긴장감이 배가된다.

이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는 수동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번개맞아 불타는 나무를 배경으로 싸움이 벌어진다.

김기영 영화에서 '불'은 중요한 요소다. 광기에 빠지거나 미쳐버린 인물들의 최후의 순간에는 항상 불이 함께하며 가장 명징한 인간 욕망의 상징으로서 기능한다. 여기서의 불타는 나무는 자신의 의지로 사랑과 결혼(그 당시를 기준으로 남자로서 해야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사항)을 할 수 없는 수동의 마음이다.

수동은 싸움 끝에 분노의 힘으로 무령을 제압한다. 그러나 자신은 이제 무령의 아내라며 그만 하라는 옥랑 때문에 상황이 반전된다. "원수에게 시집가다니, 알 수 없는 것이 계집의 마음"이라며 수동은 배신감에 힘이 빠져 무너져버리고 만다.

수동은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자신은 천민이고 무령은 양반이다. 양반이 자기가 원하는 여자를 탐하고 사랑하는 여자마저 그리로 가버린 이상, 서러움에 우는 것 말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목을 맨 수동의 시체를 보여주는 장면은 (관객이 이미 그 결과를 예상했을지라도) 감독의 화면 연출과 합쳐져 흡사 호러 영화에 가까운 충격 효과를 자아낸다.

 

 

 

수동의 죽음으로부터 이어지는 마지막 시퀀스는 슬프고도 처연하다.

비록 남아있는 필름 자료가 온전치 못해서(일부 유실된 영상) 끊기는 느낌은 있지만, 상황의 분위기나 정조는 그대로 전해진다.

한쪽에선 아들을 먼저 보낸 어미의 한 맺힌 절규가 있고, 한쪽에선 마을의 큰 혼사를 축하하는 사물놀이의 장단이 있다. 결혼(혼례)과 죽음(상례)의 극명한 대비. 그리고 또 한번의 파국.

김기영은 [춘향전]으로 시작해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이 기구한 사극의 끝을 맺는다.

여기엔 시대를 이기지 못하는 무력한 인간들과 구슬픈 판소리 음악으로 인해 전해지는 비극적 카타르시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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