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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세이렌' 이야기 있다. 세이렌은 항해하는 선원들을 노랫소리로 유혹하여 충동적으로 바다에 뛰어들게 만드는 정령이다.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에도 세이렌을 변용한 듯한 미스테리하고 치명적인 여인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주인공 선우현(김정철 분)이 4년 전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시작된다. 관광회사가 텔 유치 사업의 일환으로 전설의 섬 '이어도'를 찾기 위해 홍보 행사를 하던 중 제주신문사의 기자인 천남석(최윤석 분)이 배 위에서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와 함께 있었던 회사의 직원 선우현은 살인 혐의로 조사를 받지만 곧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다. 그는 의문의 죽음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 천남석의 고향인 파랑도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들을 만나며 점차 감춰왔던 섬의 비밀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어도>는 감독의 이전작들과 플롯 측면에서 차별화된다. 액자 구조속에 또 액자가 들어가는 복잡한 형식을 지녔기 때문에(현재-과거-대과거), 시점이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편이다. 한편으로 이런 미스테리 스릴러 구조가 여자들만 사는 토속적인 섬의 묘하고 이질적인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영화는 독특한 질감을 지니게 된다.

장르적 성격을 띠고 있긴 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천남석과 그의 부계 조상들이 겪었던 초현실적 사건들은 일종의 알레고리로서 작용한다. 영화에 삽입된 제주 민요 '이어도사나'의 창작 배경(이별이 없는 영원한 이상향에 대한 바다여인들의 염원)처럼, 대대로 남편을 거친 바다에 잃어야만 했던 섬마을 여성들은 자신들의 '한'을 풀 방법을 과격한 방식으로 찾는다.

1974년 발표된 이청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환경오염에 대한 감독의 문제 인식과 경고의 메시지도 담겨 있다. 술집 작부 역을 맡은 이화시의 오묘한 매력, 박정자(무당 역)와 권미혜(박 여인 역)의 연기가 돋보인다. 

시대와 사회에 구속된 피억압 여성들을 누구보다 잘 다루고, 무섭게 형상화해내는 김기영의 또 다른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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