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MY ARTICLE

해방의 공간

JGH 2018. 4. 30. 01:50

https://www.imdb.com/title/tt5639354/mediaviewer/rm3788525824

 

 

 

올 상반기에 개봉한 두 편의 영화, <120BPM>과 <판타스틱 우먼>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성 소수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더 의미 있는 건, 그들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힘을 가진 쪽은 아니라는 점이다. 에이즈에 걸린 후 시민 단체 액트 업 파리에서 권리 신장을 외치는 게이 션(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이나 연인을 잃은 후 주변의 냉담한 시선을 마주하는 트랜스젠더 가수 마리나(다니엘라 베가), 그들 모두 약자이다.

 

물리적으로 보나 사회적 위치로 보나 두 인물은 모두 '을'에 가깝다. 션과 그의 연인 나톤을 비롯한 프랑스의 에이즈 단체 회원들은 자신들의 절박함을 표현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는 창구가 별로 없다. 에이즈에 대한 적절한 치료법이 나오기 전이어서 마땅한 해결책도 찾기 힘들다. 관계자들은 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척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일반 시민과 언론은 물론 정부, 캠페인 회사까지 그들을 외면하고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혐오하는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활동가들이 작심하고 일을 벌인다. 구호를 외치며 직접 피켓과 모조 피를 들고 제약 회사를 찾아간 것이다. 그들은 과격하게 피 폭탄을 사방에 흩뿌리고 책임자들에게 문제점을 알려준다. 검붉은색 피는 그 자체로 끔찍하고 선연한 느낌을 준다. 조용했던 선진국 사회에 작은 파문이 일렁인다.

 

영화에서 의외로 자주 등장하는 부분은 액트 업 파리 활동가들이 서로 토론하며 부딪히는 순간이다. 밖으로 나가 시위하는 신들과 내부에서 토론하는 신들은 거의 반반의 비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이유로 서로 연대하는 그들은 주장하고, 설득하고, 반목한다. 치열한 격론 끝에 나온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은 곧 과감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대혁명과 2월 혁명의 유산이 고스란히 간직된 프랑스 민주주의 순기능이 이런 장면들에서 엿보인다.

 

하지만 소수자 단체는 결국 그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핍박받고 방해받을 수 밖에 없다. 학교와 거리에서 조롱과 멸시와 폭력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해도 나아지는 건 없다. 션이 유일하게 해방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은 단 두 곳, 클럽과 집의 침대 뿐이다.

클럽의 일렉트로닉 하우스 음악과 함께 공기 중을 부유하는 땀, 먼지등의 작은 입자들은 신체의 암세포로 변화한다.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성 소수자들의 몸짓도 결국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무용해진다는 의미를 담은 장면이다. 위험을 무릅쓴 사랑과 섹스는 결국 그들의 심장박동을 멈추게 한다.

 

<판타스틱 우먼>의 마리나 비달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죽은 연인 오를란도의 가족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한다. 사건 조사를 하는 경찰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중년의 명망있는 교수인 오를란도가 트랜스젠더와 서로 사랑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마리나는 겉으로 보기엔 일반 여성과 큰 차이가 없고 특별히 튀는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는 어딘가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존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마리나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법적인 제약으로 인해 주민등록번호도 여성의 것으로 바꾸지 못한 상태고, 오를란도가 죽기 전 계단을 구르면서 생긴 타박상 때문에 공연한 의심을 받는다. 의사나 조사관은 그녀가 남자였기 때문에, 혹은 지금도 남자라고 믿기 때문에 의심한다. 오를란도의 아들인 브루노가 마리나에게 가하는 위협들은 성 소수자이자 여자인 그녀에겐 이중의 폭력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마리나가 할 수 있는 건 무표정을 유지하는 것, 집에서 거울을 보고 어색하게 섀도 복싱을 하는 것 뿐이다.

 

영화의 매력은 소외된 마리나가 자신을 자유롭게 펼쳐놓을 때 발휘된다. 음악과 춤과 열기로 가득 찬 '클럽'에서는 차별과 위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바, 오페라 극장에서 노래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기의가 없는 기표 같았던 마리나의 얼굴색은 미러볼 조명과 만나 팔색조처럼 변화한다. 마치 도화지처럼, 그녀의 얼굴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장소가 된다. 이는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부유하는 정체성을 은유하기도 한다. 거울에 비친 마리나의 굴절된 모습들 역시 분열보다, 다양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헤게모니를 쥔 자들은 말한다. 더럽고 징그럽다고. 그들은 괴물들이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가만히 있기를 바란다. 가만히만 있어주면 거슬리지도 않고 존재 여부도 잘 드러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자유의지가 있는 주체적 인간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냥 사는 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부당함을 인지했다면, 움직여야 한다. 영화 속 션이나 마리나처럼. 최근의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는 건 고무적이다. 

 

<120 BPM>과 <판타스틱 우먼>은 해방의 공간으로서의 '성(性)'을 다룬다. 현실에서의 억압은 연인과의 섹스, 클럽에서의 자유로운 춤과 부대낌을 통해 해소된다. 브론스키 비트의 'Smalltown Boy',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Time'은 각각의 영화에서 주인공의 현실과 염원을 드러내는 음악으로 쓰인다. 

결국 두 편 모두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영화다. <120 BPM>의 말미엔 죽음도 삶의 일부임을 보여주는 슬픈 시퀀스가 있고, <판타스틱 우먼>의 마리나는 현실의 제약을 벗어던지고 멋지게 오페라 곡을 노래한다.

이렇듯 성별과 성적지향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겐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갈 당당한 권리가 있다는 것,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