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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Village Roadshow Films North America Inc. and RatPac-Dune Entertainment LLC - U.S., Can

 

 

 

 

할리우드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유명사나 마찬가지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는 늘 관객들을 설레고 흥분되게 한다. 최신의 기술로 무장한 SF 블록버스터 영화에 모두가 공감할 만한 휴머니즘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에 <이티>가 그랬고, 90년대엔 <쥬라기 공원>이 그랬으며 2000년대엔 <에이 아이>와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그랬다. 항상 첨단의 특수효과로 시대를 선도해왔던 그답게,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한 요소인 VR(가상현실)을 스크린 위에 구현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고아 소년 웨이드 왓츠(타이 쉐리던)가 가상현실 세계 '오아시스'에서 겪는 모험으로 압축할 수 있다. 영화는 얼핏 보면 디지털 비주얼과 게임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어드벤쳐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영화 속 외양은 그저 주제를 전달하는 화려한 얼개임을 알 수 있다. 그 얼개 위에 담고 싶었던 것은 바로 20세기 대중문화(하위문화)의 황금기였던 80년대 그 자체다. 중요한 것은 가상 실재(시뮬라크르, 매트릭스)가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 디테일들이고, 그 면면은 80년대 상업 영화(앰블린 엔터테인먼트 제작 영화들, 일본 애니메이션 등)를 비롯한 100여년 할리우드 역사의 수많은 레퍼런스들로 구성돼 있다. 오히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에 더 들어맞는 영화는 <쥬라기 공원>(1993)이다. 실재와 또 다른 실재가 구분되지 않고 섞여들기 때문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가상현실은 말 그대로 '가상'으로서만 기능할 뿐, 현실에 침투하지는 않는다.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의 한 축은 어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어드벤쳐 무비다. 아이가 주역인 스필버그 영화만 해도 10여편에 이른다. 그의 영화를 거칠게 두 부류로 나누면 한 편엔 '정체성을 고민하는 진지한 홀로코스트 영화'가 있고, 반대편엔 '아이가 주인공인 판타지 영화'가 있다. 그리고 후자의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버림받은 아이'라는 테마를 다룬다. 스필버그 영화에서 정상적인 가족관계는 없으며, 감독은 블록버스터라는 장르적 외피 안에서 어떻게든 이 '균열'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한다.

 

 

 

영화 <후크>의 한 장면. © Sony Pictures Home Entertainment

 

 

 

<레디 플레이어 원>의 웨이드(ID 퍼시발)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가 없는 그는 이모와 함께 살긴 하지만 오아시스 세계에서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외톨이다.

소년(<에이 아이>), 청년(<캐치 미 이프 유 캔>), 중년(<후크>)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스필버그의 다른 영화들도 이와 비슷하다. 로봇 데이빗(<에이 아이>), 십대 프랭크(<캐치 미 이프 유 캔>), 네버랜드의 피터 팬(<후크>), 그리고 <레디 플레이어 원>의 웨이드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타의에 의해서 어린 시절 부모와 헤어져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극 초반부에 가족이 없거나 사이가 멀어진 상태다. 하지만 이후의 모험과 사건들을 통해 다시 가족과 만나게 된다. 그 방식은 재결합(<에이 아이>)이 될 수도 있고 재구성(<후크>)이 될 수도 있으며 대안 가족(<캐치 미이 이프 유 캔>)이 될 수도 있다.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우는 아이 눈물 닦아주는 심정으로 상처 입은 캐릭터들에게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아는 만큼 더 재미있는 영화다. <백 투 더 퓨쳐>, <샤이닝>, <토요일 밤의 열기> 등을 알고 있는 관객은 이 영화들이 어떤 맥락으로 사용되었는가를 생각하며 발견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음악이나 게임들 역시 마찬가지다. 애착을 가졌던 문화 콘텐츠가 나름의 위치와 가치를 갖고 등장할 때, 기억 속의 취향은 현재로 재구성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몰라도 영화를 관람하는 데엔 전혀 문제가 없다. 스토리 진행이 이해하기 쉽고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어른아이 스필버그는 할리우드의 피터 팬답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 다룰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메시지란 '동심', '순수'같은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다. 마지막 퀘스트를 완수하고 세 개의 열쇠를 모두 손에 넣은 웨이드가 오아시스의 설계자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일런스)를 만나서 '에그'를 받을 때 그 가치가 설명된다. 밝게 빛나는 황금색 에그는 담고 있는 내용이나 쓸모를 떠나서, 그 자체로 의미있고 소중한 모험 정신이다.

 

"Reality is Real." ("현실은 진짜다") 할리데이의 마지막 말을 통해 스필버그는 주제를 전달한다. 아무리 사실감 넘치는 VR일지라도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하다 는 것. 가상 세계 속의 허구가 아니라 진짜 삶에서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사랑하는 상대와의 키스, 따뜻한 밥 같은)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아이 웨이드는 자신의 용기와 정의감 덕분에 위기에 빠진 가상 세계를 구원한다. 그리고 함께 플레이한 아르테미스(사만다), H, 다이토, 쇼와 함께 현실에서 대안 가족을 이루게 된다. 오아시스 역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운영하고 꾸려가는 민주적인 시스템으로 재편된다. 성별, 인종, 나이등을 떠나서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

여기, 20세기의 순수와 21세기의 기술력이 만난 스필버그의 유토피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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